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살바도르 달리 (문단 편집) === 말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thimg.todayhumor.co.kr/1445854873119.jpg|width=100%]]}}} || || '''1986년, 헬무트 뉴튼이 촬영한 살바도르 달리''' || >'''"내 시계가 어디 있지?"''' >---- >─ 달리의 유언. [[1968년]] 달리는 갈라에게 지로나의 성을 사 주었다. 그리고 달리는 갈라의 요청에 따라 그녀의 허락 없이는 그 성에 접근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였다. 자신의 오랜 뮤즈가 멀어지자 달리는 [[신경쇠약]]과 [[우울]], 그리고 건강악화를 겪는다. 이 와중에 갈라는 젊은 남자들과 바람을 폈다고 전해진다.[* 흔히 알려진 갈라의 젊은 연인 중 한명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 역을 맡은 '제프 팬홀트'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43년. 1973년부터 두 사람은 연인이었다.] 하지만 사생활과 다르게, [[1970년대]] 달리는 작품활동을 활발히 이어나갔다. [[1969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무대연출과 프로그램 컨셉 아트를 만들기도 했으며, 피게라스에 달리 미술관을 세우기 위한 재단을 창설했으며 미술관의 천장화 제작에 참가하였다. 또한 뉴욕에서 최초의 입체 작품을 전시하는 등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76세가 되던 [[1980년]], [[중풍]]의 영향으로 달리는 붓을 잡기가 힘들 만큼 [[수전증]]에 시달리게 된다. 갈라의 [[불륜]]이 지속되면서 달리는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그녀를 폭행하여 [[갈비뼈]] 두개를 부러트리고[* 갈라의 갈비뼈가 아니라 [[골반]]을 두 조각 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갈라는 이러한 달리에게 보복성으로 쌍방 폭행을 했다고 한다.] 갈라는 흥분한 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벤조디아제핀|바리움]]을 투여했는데, 적정량을 넘어선 투약으로 달리는 [[혼수상태]]가 되어버리고 또 이것을 처치하기 위해 [[암페타민]]이라는 중추신경 자극제를 투여하게 된다. 이러한 약물 칵테일이 달리의 신경계에 나쁜 영향을 끼쳤고 그의 정신병은 더욱 심해지며 몸을 떨기까지 했다. 이 무렵 갈라는 [[치매|노인성 치매]]의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2년]] 달리는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후작]] 작위(Marqués de Dalí de Púbol)를 받게 되었지만 갈라가 같은 해 [[6월 10일]] 8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고, 이후 달리는 삶에 대한 의지를 잃게 된다. [[1984년]] 그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친구들이 그를 구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달리는 [[화상]]을 입었으며, 일부 시각에서는 이 화재가 달리의 [[자살]]시도라고 보기도 한다. 달리는 심부전으로 [[1988년]] [[11월]] 입원했고, [[1989년]] [[1월 23일]] 아침 그는 84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한 곳은 자신이 태어난 집과 불과 세 블록 떨어진 거리였다. 그의 장례는 Sant Pere 교회에서 치러졌으며 [[후안 카를로스 1세|카를로스 국왕]]이 그의 장례식에 참가했다. 그의 시신은 자신의 미술관인 피게라스 극장 미술관에 안치되었다. 자식은 없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난데없이 61세인 빌라 아벨 마르티네즈라는 여성이 딸이라고 주장하며 3700억이 넘는 달리 재산(사회단체에 속해져있다고)의 상당수 상속을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논란 끝에 28년만에 묘지가 파헤쳐졌고 피부와 손톱, 뼈에서 DNA 샘플이 채취됐다. 스페인 국립 독성학 법의학 연구소에서 이 샘플을 통해 DNA 조사를 하게 되었으나 분석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마드리드 법원은 그대로 친자 소송을 기각하고 [[https://english.elpais.com/elpais/2017/10/16/inenglish/1508162182_382972.html|묘지 발굴 비용을 지불]]하라고 명령하였다.[* 정확한 수치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당시 아벨의 변호사였던 Enrique Blánquez에 따르면 약 7,000 유로 정도로 추산된다.] 달리 재단은 이에 대해 고인을 모독한 사기극이 끝났다라고 자평하였다. 판결 직후 빌라 아벨은 샘플의 관리 연속성(chain of custody)에 의문을 표한다면서 항소하였으나, 3년 정도 지난 2020년 5월 마드리드 법원에서 이를 기각하고 발굴 비용을 지불하라고 판결하였다.[[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0/may/19/court-dismisses-appeal-from-woman-claiming-to-be-salvador-dalis-daughter|#]]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